240819_지하철 목캔디

미리미터 2025. 2. 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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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만원 지하철이었다.

 

큰 키, 단정한 차림새의 할아버지가 바로 앞에 서계셨다. 

할아버지는 선로를 따라 움직이는 기차에 이리로, 저리로 흔들리셨다. 

 

서있던 사람들이 빠진 후에는 저 멀리 문 옆 기둥에 몸을 기대셨다.

구석에서 벽을 바라본 채로.

 

‘곧 내리셔서 그냥 서계시는 건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좌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무언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서 있던 앞 좌석에 자리가 났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관심은 온통 저 멀리 계신 할아버지에게로 쏠렸다.

 

‘언제 내리실까?

지금 내가 앉은 자리랑 서계신 자리랑 좀 먼데, 

일어나서 자리 양보해드리는 동안 다른 분이 앉으면 어떡하지?

음 괜히 서계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앉고 싶어하실 거란 게 섣부른 판단은 아닐까?’

 

자리 하나 양보하는 데 생각이 왜 그리 많은지.

고민하다가 더 많은 역을 지나치기 전에 

가방과 책으로 자리를 맡아두고 할아버지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기, 자리가 났는데 앉으시라고.

 

할아버지는 눈썹을 살짝 올리시고는,

고맙다고 하시며 앉으셨다.

 

그렇게 몇몇 정거장을 지나고

서 있던 내 앞으로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악수를 청하고 어깨를 토닥이시며

다시금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목캔디를 건네주셨다.

중국에서 유명한 목캔디인데,

목이 아플 때 먹으면 효과가 좋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앉아계시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사탕을 꺼내셨을지 생각하니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마음이 따뜻해졌다.


살아가다 보면 ‘굳이’ 싶은 순간이 있다.

 

굳이 가방으로 자리를 맡아 멀리 서계신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라든가,

굳이 일상 속 사소한 일을 이렇게 글로 남겨둔다든가.

 

남들이 보기엔 수고스러운 일이더라도, 

‘굳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굳이 하는 일로 언제어디서 정다운 마음을 나누게 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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